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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CEIU 인사이트] 글로벌 팬데믹 시대의 평화: 세계시민교육에 대한 함의

 

요나스 아다예 아데토

(아디스아바바대학교 평화안보연구소 소장)

 

평화는 당사자들 내면 및 당사자들 사이의 긍정적인 관계이다. 요한 갈퉁(Johan Galtung)에 따르면, 평화는 몸과 마음과 정신이 하나가 되는 사랑의 한 형태인데 더 일반적인 의미에서 사랑은 이러한 합일이 모여 더 큰 합일이 되는 것이다. 사랑은 성과 신체적 부드러움의 기적이며, 두 마음이 기쁨과 고통을 공유하고 화합하여 공명하는 기적이고, 두 사람이 몸과 마음과 정신의 합일에 대한 건설적인 성찰을 비롯하여 자신들을 넘어서는 공동의 프로젝트를 갖는 기적이다. 평화에 대한 이 사랑의 비유를 공동체나 국가에 확대하면, 갈퉁이 말한 대로, “신체는 경제, 마음은 정치이며, 정신은 문화, 특히 깊이 집단적으로 공유되는 무의식적 문화”로 내면의 평화의 기초가 된다. 평화를 구성하는 것은 바로 이 상호연결성과 복잡성이다.

 

평화는 또한 사람 사이뿐 아니라 한 사람의 내면에서의 긍정적인 관계로 볼 수 있다. 어떤 경우든지 평화를 위한 조건은 이타주의, 연민, 존엄, 평등, 형평, 사랑, 상호성, 존중 등인데, (중요도가) 반드시 이 순서인 것은 아니다. 이러한 요소들 전부 또는 일부가 부재한 사회구조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하고 요구하는 것을 제공하지 않아 평화를 실현하기 어렵게 만든다. 일단 이런 자질들이 개인 안에 개발되면 사람들은 평화와 화합의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달라이 라마가 말했듯이, 이 분위기는 개인에서 가족으로, 가족에서 공동체로, 또 궁극적으로 전 세계로 확대될 수 있다.

 

이 글로벌 팬데믹 시기에 우리 자신들과의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개인으로서의 자신을 내적으로 변화시키고 내면의 평화를 키울 수 있을까?

 

팬데믹 격동기에 내면의 평화는 가족, 공동체, 국가 및 세계 차원으로 확산되고 스며들 필요가 있는데, 필자는 개인이 내면의 평화를 얻기 위한 내적 변혁을 위해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P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목적(purpose)은 우리가 평화를 추구하는 명분이나 합리적 이유이고, 둘째, 열정(passion)은 평화에 대한 의지, 연민, 헌신이다. 셋째는 기도(prayer)로, 평화는 물질적 세계를 초월하여 정신적 차원을 지니며 현재라는 물리적 세계를 넘어선다. 넷째, 평화는 사랑처럼 관계적인 것이고 상호작용으로 표현되므로 파트너십(partnership)이 필요하다. 마지막은 실천(practice)으로, 평화는 결코 수동적인 것이 아니며 사랑과 같이 행동으로 표현되고, 보여지고, 숭배되고, 찬양되며, 부드럽게 다루고, 포옹하고, 수용하고, 어루만지고, 느끼고, 존중되고, 냄새 맡고, 공유되고, 아끼고, 함께 살아가는 것 등이다.

 

목적: 왜 평화인가?

 

우리는 특히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글로벌 팬데믹 상황에서 마음의 평화에 대한 내적 갈구와 갈망이 있다. 우리가 현재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보는 것은 거의 언제나 코로나19로 야기된 죽음, 멸시, 파괴에 대한 것이다. 텔레비전을 보는 우리 눈앞에서 수천 명이 자주 존엄성이 훼손된 방식으로 매장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인간이 얼마나 취약하고 연약한 존재인가를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우리는 마음 깊숙이 완전한 공허함, 무력감, 우울함을 느낀다. 희망의 소식, 위로의 소식, 긍정적인 정보를 주는 소식, 평화의 소식은 지구상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에 우리는 완전히 기진맥진해졌고 크게 벌어진 마음의 틈을 내면의 평화로 채울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어떤 음식이나 음료로도 이 갈망을 채울 수 없다. 아침이나 저녁 뉴스는 지구상 이곳저곳에 생겨나는 대규모 무덤 영상들로 가득하다.

 

우리 아이들이나 이웃집 아이들을 바라보고 이들의 희망에 대해 생각하면서, “이 아이들에게 미래가 있을까?”, “이 아이들이 평화를 가질 수 있을까?” 자문하게 된다. 아이들은 봉쇄조치로 집에 갇혀 지내며 학교에도 다니지 못하고 뛰어 놀 수도 없다. 모두 갇힌 채로,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한 노력에 있어서 경제적 선진국의 꼬리표를 증명하지 못한 선진국들을 통해 씁쓸한 수업을 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오로지 내면의 평화, 마음의 평화만을 부르짖고 갈망한다. 내면의 평화 없이 의미 있는 삶을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 너무 잘 알고 있다.

 

내면의 평화를 위해 필수적인 것은 자기 자신, 타인, 자연 및 자신의 양심 또는 창조주와 긍정적인 태도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우리가 내면의 평화를 추구하는 것은 자기보존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함은 물론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에 의한 인류유발적 파괴로부터 지구를 구하기 위한 것이다. 일반적인 평화, 특히 내면의 평화는 인간의 삶과 인류의 발전에 미치는 효과를 볼 때 그 중요성이 명백해진다. 바로 이런 현실이 세계시민교육의 변혁적 교수법과 평화교육에 반영되어야 한다. 세계시민교육은 젊은 세대가 예기치 못한 위기의 시기에 내면의 평화를 키우고, 시간을 거치며 세계시민교육 수업의 변혁적 교수법을 통해 습득한 기술, 열정, 역량을 활용하여 역경을 기회로 전환할 자신만의 전략을 개발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야 한다.

 

평화를 위한 열정

 

평화를 향한 열정은 개인의 심리적 회복탄력성이자 힘이며 평화를 위한 집단적 행동이다. 열정은 의지이며, 이는 내면의 평화를 위한 동력을 결집하는 엔진이다. 이러한 열정은 평화교육을 통한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창의적이며 혁신적인 접근으로 실현될 수 있다.

 

필자에게, 열정은 공동체의 평화구축 활동에 창의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에 대한 헌신을 의미한다. 즉, 비록 오늘은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으로 구름이 잔뜩 낀 날이지만 내일은 더 나은 화창한 날이 되리라 생각하면서 용기 있게 불 위를 걷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적과의 가시적 전쟁과 위기 속에서 평화를 상상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필자는 대부분의 평화학 과정에 빠져있는 이 연결 고리를 세계시민교육에 포함할 것을 권고한다. 이를 통해, 세계시민교육은 젊은 세대가 현재를 넘어서서 상상력에 불을 붙이고 이를 확장해나감으로써, 미답의 미래에 대해,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으로 인해 예기치 않게 부상하는 전지구적인 인류의 위험에 대해, 그리고 향후 닥칠 미지의 팬데믹에 대비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다.

 

내면의 평화를 위해 중요한 기도

 

내면의 평화를 가지고 더 나은 삶을 만들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자신의 한계를 알고 이를 인정하며 그 차이를 메우고자 노력하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코로나19가 인류에게 가르쳐 준 가장 놀라운 교훈은 인간의 능력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 또는 제한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은 한계가 있다. 문명도 한계가 있다. 인간은 허약하고 취약하며 연약하다. 인류는 아직 운명을 통제하지 못한다. 개발도상국뿐만 아니라 선진국도 코로나19 앞에서는 별로 다르지 않다.

 

필자의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 보면, 기도는, 우리가 어떤 이름을 붙이든 상관없이, 창조주와의 교감이고 대화이기 때문에 내면의 평화를 위해 중요하다. 기도는 개인들의 합을 초월한 무언가에 대한 심오한 인식인 영성(spirituality)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며, 이는 내면의 평화를 얻기 위한 기초이다.

 

갈퉁의 표현을 빌면, “우리를 초월한 무언가가 있다.” 우리가 글로벌 팬데믹 격동기에 내면의 평화를 갖는 것은 현재를 넘어섬으로써, 물리적이고 물질적인 세계를 초월함으로써, 그리고 우리의 신체를 넘어 마음과 정신에 다다름으로써 가능하다. 이것 역시 우리 교육제도가 거의 등한시하는 또 다른 영역이어서, 필자는 기도가 자신 내면의 평화와 타인과의 평화를 조성하여 전인적 인격을 갖추도록 해주므로 이를 세계시민교육 수업에 강력히 권고한다.

 

파트너십: 일상생활의 절망감을 이기는 가장 강력한 해독제

 

평화는 관계적이다. 우리는 단지 고립된 개인들의 총합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보다 먼저 떠난 사람들과 우리 옆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얻는 영감 때문에 살아간다. 우리는 관계라 불리는 네트워크 안에 머물고, 우리 삶의 과제는 타인에게 영감을 주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영감의 폭포에 살고 있다. 아프리카 철학 ‘우분투(Ubuntu)’가 가르치듯이,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데스몬드 투투(Desmond Tutu) 대주교의 표현을 빌면 “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통해 한 사람이 된다.”

 

코로나19 격동기에 ‘사회적 거리두기’ 규칙에 상관없이, 파트너십은 일상생활의 절망감, 외로움과 암울함을 이기는 가장 강력한 해독제이다. 파트너십 안에서, 우리는 매일 업데이트 되는 코로나바이러스 양성 반응자 수, 생존자 수, 사망자 수 등 코로나19 관련 뉴스로 질식할 것 같은 상태에서, 하루 동안 쌓인 무거운 감정의 일부나마 파트너와 함께 얘기하고 내려놓게 된다. 파트너십을 가질 때 내면의 평화와 위안이 도래한다. 평화 구축과 관계 맺기는 파트너십을 내포한다. 평화는 본질적으로 관계적이어서 고립된 개인주의는 내적, 영속적 평화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것은 세계시민교육에 대해 매우 근본적인 요점을 제시한다. 즉, 학습자가 총체적으로 참여할 때, 또 학습자가 배운 것을 실행하기에 앞서 학습이 그들에게 의미가 있을 때 학습 자체가 곧 삶이 되므로, 파트너십은 학습과 건강한 삶의 영위를 위한 영감의 원천이 된다는 것이다.

 

실천: 평화는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힘

 

그 의미와 목적을 볼 때, 평화는 영속적이거나 현상유지 상태가 아니다. 또한 소극적 무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평화는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힘이다. 평화를 하나의 목적으로 삼고 몰두하는 것은 개인이나 집단이 모든 형태의 폭력적 갈등에 대항할 힘을 준다. 더불어 평화에 대한 생각은 열정을 만들고 인류의 진보로 향하는 길을 밝혀준다.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과 갈퉁이 주장한대로, 평화의 근원과 중심이 되고, 파트너나 네트워크 안에서 평화로운 생각을 소통하는 것은 인간이 개인주의 영역에서 벗어나고 타인의 안녕을 위한 행동을 하도록 북돋운다.

 

학습된 실천과 새로운 활동을 통해 사람들은 평화에 이르는 길로 나아간다. 사랑과 마찬가지로, 평화는 행동, 상호작용, 적극적 행위 없이 생명력을 가지지 못한다. 평화는 오래된 관계에 새로운 현실을 필요로 한다. 커플이 사랑할 때 고립되고 지루한 특이성을 탈피하여 집합적이며 완전한 삶과 새로운 관계로 맺어진 지상천국의 특이성을 가지며 변모하듯이, 평화는 실천할 때 동요에서 고요로, 무미건조함에서 영감으로, 암흑에서 빛으로 변모한다. 우리가 공동체와 글로벌 차원뿐 아니라 개인 차원에서 작동하는 세계 평화를 이루고자 한다면, 평화 현상의 이러한 측면이 세계시민교육에 포함되고 반영될 필요가 있다.

 

맺으며

 

우리가 지구상에서 코로나바이러스 글로벌 팬데믹 시기에 인류라는 종(種)으로서 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인류 공동체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평화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과 그에 적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리는 평화에 대한 목적, 열정, 기도와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평화를 실천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내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글로벌 위기가 지속되는 동안과 그 이후에도 우리는 인류를 위한 각자의 재능을 소중히 여김으로써 우리 자신의 문화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에 있는 평화의 요소를 칭송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아인슈타인이 말했듯이, 우리는 서로를 향한 태도와 미래에 대한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현재 또는 미래의 팬데믹으로 인한 격동 속에서, 가족, 공동체, 그리고 세계 평화의 기초가 되는, 개인 차원의 내적 변혁을 통한 내면의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 생각을 바꾸는 것은 우리 세대의 책임이다.

 

URL:

(No.6) 글로벌 팬데믹 시대의 평화: 세계시민교육에 대한 함의 > EIU 소식&인터뷰 - APCEIU (unescoapceiu.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