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미랄라오
(전 유네스코필리핀위원회 사무총장)
지금부터 세월이 흘러 코로나19가 단지 인류 경험사에 있었던 하나의 일시적 사건으로 여겨질 때, 이 시기에 대한 기술은 2020년의 코로나19 팬데믹이 세계 발전의 궤적을 교착상태에 빠뜨리고 장기적 사회변화와 변혁의 씨를 뿌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가 팬데믹으로 선언된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아, 나라마다 국경 폐쇄와 봉쇄 조치가 잇달았고 세계는 거의 정지 상태에 이르렀다. 악화일로의 참사는 여행과 이동은 물론 거의 모든 경제활동을 정지시키고, 학교, 사무실, 교회, 공공장소의 폐쇄를 초래했다. 세계가 팬데믹에 준비되지 않았던 만큼, 코로나19는 선진국의 가장 현대적인 의료체계조차 무력하게 만들고, 각국 정부가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팬데믹과 싸우기 위해 자원을 총동원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봉쇄 이후 몇 주 지나지 않아 코로나19로 인한 공포와 불확실성 속에서 예상하지 못했으나 기운을 북돋는 일부 변화가 있어 시민과 지역사회가 반기게 되었다. 이 중 즉각적으로 나타난 변화는 세계적인 대기의 질이 개선된 것이다. 코로나19의 급속한 확산과 항공, 해상, 육상 여행의 중지, 제조와 산업 활동의 축소로, 공기가 깨끗해지며 지구 공동체가 애먹었던 환경 목표의 달성에 진전을 이루게 된 것이다. 또한 ‘(외부활동을 줄이고) 안전하게 집안에 머물기’라는 봉쇄조치 연장으로 사람들의 바쁜 일상이 정지됨에 따라, 팬데믹은 생활 방식의 변화를 불러일으켰고, 사람들은 잠시 멈춰 서서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삶을 어떻게 재조정할지 재고하게 되었다.
단결하여 팬데믹과 싸우기
예상대로, 각 정부는 코로나19 발생 대응에 앞장서서 의료시설을 신속히 확충하고 국민에게 직접적인 재정 모조금을 제공했다. 또한 여타 단체와 개인들이 독자적으로 지원 활동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물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고 조달하기 위해 민간 부문 및 시민단체와 파트너십과 협력을 맺었다.
대기업, 갑부, 유명인사들은 이례적으로 이윤을 제쳐놓고 대중에게 음식과 생필품을 공급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기부했고, 병원과 치료센터 수용능력 확대를 위한 구조물을 세우고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자 연구개발비를 제공했다. 심지어 제조 공장의 용도까지 변경하여 마스크, 보호구 등 절실히 요구되는 물품과 장비 생산에 사용하도록 하였다.
지역단체, 교회, 자선단체, 시민단체, 비영리단체는 음식 제공과 지원 프로그램을 조직하는 등 유사한 지원활동을 펼쳤다. 통상적인 시장 접근이 어려워진 농부들은 농산물을 무료 또는 아주 저렴한 가격에 사람들에게 제공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여러 가정과 노숙자들을 위해 식료품과 필수품을 준비하여 포장, 배달하였다. 예술가와 재능이나 전문지식을 갖춘 사람들은 집안에 갇혀 지내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자 온라인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지속된 봉쇄로 점점 불안해하고 낙담한 사람들에게 온라인 상담을 제공했다. 교회 역시 온라인으로 신자들에게 예배를 생중계했다.
전 세계 시민들은 목숨을 걸고 코로나19 환자를 돌보는 의료, 보안, 치안 관계자들의 노고와 헌신에 진심 어린 감사를 표현하면서, 거리와 소셜 미디어에서 팬데믹의 최전선 일꾼들에 대한 고마움과 경의를 표하기 위한 감동적인 행사들을 조직했다. 이것은 마치 팬데믹이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을 움직여 서로에 대한 연민과 모두가 하나의 같은 인류에 속한다는 연대감을 느끼게 한 것 같았다.
코로나19의 피해
앞서 언급한 다양한 주체들의 보살핌과 협력의 실 사례들에도 불구하고,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의 지속적인 증가로 가늠할 수 없는 고통을 초래하는 등 코로나19는 사회와 경제를 강타했음을 지적해야만 한다. 또한 팬데믹은 광범위한 실업을 야기했는데, 거의 모든 경제 부문에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 중 많은 분야는 자유무역의 장애물을 감소시킨 양자 및 다자 협정을 통한 경제 세계화와 다른 형태의 국가간 교류에 힘입어 팬데믹 직전에는 견실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입힌 심각한 경제적 손상으로 세계 전역의 국가들이 극심한 경제 침체나 거의 성장하지 않는 정체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국가들이 자국 경제가 국제 위기와 재난에 취약함을 목도함에 따라, 혹자는 팬데믹이 세계화의 강점과 약점을 드러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이주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에 크게 의존했던 농업 기업들은 더 이상 농산물을 용이하고 효과적으로 수확하고 가공할 수 없게 되었다. 선진국에서 상품 수요가 하락하고 시장이 축소되며 개도국에 위치한 많은 제조 및 산업 시설들은 생산을 멈추거나 생산규모를 감축했다. 다수의 사업체들은 다른 지역에서 생산하는 부품이나 수행하는 공정에 대한 의존도를 고려하여 폐쇄되었다.
한편, (필리핀처럼) 해외이주 노동자들의 송금으로 경제가 지탱되던 나라들은 상당한 수입 감소를 겪었고, 타국에서 실업자가 된 자국민의 본국 송환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팬데믹으로 인해 일자리와 생계수단의 대규모 손실로 빈곤층이 늘어났으며, 사업체와 일자리를 잃은 사회 주류층과 중산층에서조차 새로운 하위계층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음으로, 국가경제가 서로 연결되어 있어 어떤 국가든 자급자족할 수 없다는 사실의 자각으로, 팬데믹 이전에 이미 많은 국가에서 명백히 나타난 현상이었던 국수주의적, 전체주의적 경향이 더욱 심해지는 것으로 보인다. 국가 차원에서 경제 재건 구상은 해외 노동력, 상품,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특히 식량 생산과 필수서비스 제공 에서 자급자족도를 높이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렇다면 각 국 정부가 세계적인 경제의 격랑으로부터 자국을 보호하고자 점점 더 보호무역주의로 돌아서고 국수주의적 경제정책을 추진하게 된다 해도 놀랍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 코로나19와 맞서 싸우기 위한 국가 비상사태 선언으로 각종 규제, 통행금지, 봉쇄 조치 시행, 평화와 질서 유지 및 코로나19 환자의 돌봄과 치료에 필요한 수송 활동 수행을 위해 경찰과 군대에 더 큰 힘과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 정당화되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의도치 않게, 팬데믹 이전에 역시 적지 않은 국가에서 나타났던 ‘강한 지도자/강한 국가’의 재부상을 강화시켰다. 국수주의적, 권위주의적 경향의 부활은 이동성과 이동의 자유와 국가간 및 문화간 교류를 증진했던 이전의 세계화 추세의 퇴보를 나타낸다.
사회적 긴장과 갈등 고조
팬데믹으로 인해 정부와 다른 사회적 주체들이 코로나19과 싸우기 위해 서로 협력하게 되었지만, 이것이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는 지정학적 긴장과 사회적 갈등을 충분히 억제하지는 못했다. 예를 들어, 국가 간 역사적 국경 분쟁이나 영토와 주권의 문제는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민감한 사안으로 남아있다.
세계 강대국들이 기술, 경제, 정치의 세계적 우위를 놓고 경쟁하면서 나타나는 이들 간의 이념적, 경제적 긴장도 우려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러한 긴장은 완화되지 않았고, 오히려 최근의 국수주의 및 권위주의적 경향과, 각 국 정부와 국제기구들에 의해 코로나19의 발생 기원과 확산 및 대응이 정치화된 탓에 악화되었을지 모른다.
코로나19 역시 오래된 계급 간 격차와 현대화 및 세계화에 수반된 사회의 분화와 다양성 증대에서 생기는 갈등의 발생을 줄이지 못했다. 이러한 격차의 일부는 작금의 이념전쟁과 ‘문화전쟁’으로 진화하여 종족, 인종, 성, 종교 다양성과 권리 같은 문제들에 대한 논쟁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이러한 갈등의 미해결은 코로나19 봉쇄와 다중 모임 금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세계 곳곳에서 거리 집회와 시위 행동으로 분출했다. (자유, 민주주의, 인권, 주권, 기타 관련 대의명분의 수호를 위해 조직된) 이런 시위 행동은 때로는 통제되지 않은 채 폭력적으로 변하면서, 극단주의, 당파성 및 국가의 양극화를 부채질하는 뿌리깊은 차이를 표면화시킨다.
이는 또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관점과 시각이 매우 상이한 국가들 간에 글로벌 이슈에 대한 하나의 공통된 인식을 이르는 데 겪는 어려움을 부각시킨다. 이러한 갈등의 지속은 지정학적 긴장을 키울 뿐 아니라 정부의 관심을 분산시켜 팬데믹으로 촉발된 복잡한 문제들에 집중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재건과 회복의 과제들
비록 코로나19의 피해가 광범위하지만, 팬데믹은 대기와 환경의 질 개선 같은 일부 유익한 결과를 가져왔다. 팬데믹은 한편으로는 협력과 단결을 지향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불일치와 분열을 지향하는 대립되는 사회적 경향에 초점을 맞추도록 했다.
국가와 세계 공동체가 팬데믹의 종식시키고 경제 회복을 이루며 사회생활의 일상성을 회복하는 데 있어서의 성공 여부는 국가의 발전을 위해 긴장과 갈등을 관리하고 공중의 지지와 단결을 모으는 역량에 적잖게 달려있다.
각국 사회와 경제의 회복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대체로 ‘평소대로’(business as usual) 되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라고 여겨지는데, 이는 코로나19 이후의 세계에서의 새로운 규범과 관행의 진화를 의미한다. 또한 ‘뉴노멀(new normal)’을 향한 사회의 재건은 이용 가능한 자원을 소진하고 국내적, 국제적으로 기존의 균열과 분열을 악화시킬 수도 있는 커다란 도전과제로 가득하다는 점도 인정된다.
가장 큰 도전은 경제일선에 있는데, 각국 정부는 대량 실업, 분배 악화, 빈곤, 불평등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건의료 측면에서는, 코로나19 대응에서 기대되는 과학적, 의학적 약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도전 과제는 바로 코로나19 여파로 점차 뒤따를 것으로 예상되는 팬데믹 관련 기아와 질병의 증가이다. 보건의료 관련 요구는 세계 곳곳의, 이미 빈곤하고 갈등에 시달리며 팬데믹에 고통받는 장소와 지역들에서 공공의료의 제공 범위를 쉽게 능가하고 인도주의적 원조의 제공에 타격을 줄 수 있다.
교육 분야에서는, 교육기관들은 봉쇄기간 중 학교 폐쇄로 인한 학교교육의 중단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디지털 기술 덕분에 원격교육과 온라인 교육프로그램 추진에 있어 많은 진전이 이루어졌지만, 교육부문은 인터넷과 온라인 학습에 대한 지역 간 접근도 격차를 고려하면서 변경된 학교교육체제 및 여건에 맞게 학사일정과 교육과정을 조정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해 있다.
마지막으로, 오늘날의 고도로 분화되고 사회적, 언어적, 인구학적으로 다양한 사회에서는 공통점이 줄어들었고 개인의 행동과 사회 생활을 통제하기 위한 지침이 되는 규범과 가치도 감소하고 있다. 다양한 사회 계층, 연령, 성, 민족, 인종, 종교 집단들이 갖는 견해의 차이는 갈등과 사회 불안을 키운다.
정치인, 사회운동가, 이익집단이 자연스럽게 이런 갈등에 말려들면서 갈등은 곧 양극화, 정치화된다. 앞에서 지적한 대로, 코로나19가 국가 내부와 국가들 사이에 이러한 파괴적이고 분열적인 과정을 악화시켜 정부는 긴급한 사회경제적 대책과 개혁을 추진하는 이면에서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시민을 단결시키는 데 상당한 압박을 받게 만드는 듯하다.
하지만 긍정적 측면에서는, 코로나19는 사람들을 결집시켜 모두 함께 겪는 고통의 시기에 서로 공감하고 긍휼히 여기도록 함으로써 사회가 해체되거나 다양한 아노미(무규범 상태)나 기능장애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했다.
갈등과 논쟁이 정치의 본질이므로 정부는 위기상황에 사람들을 단결시키고 효과적으로 통치하기에 유리한 위치에 있지 않다. 코로나19의 경험이, 사회를 온전히 유지하고 사람들이 곤경과 시련의 시기를 넘기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정치나 정부 밖의 다른 사회 기관들-가족, 교육기관, 종교기관 등-의 역할을 강조하게 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공동체를 구축하고, 아동이 성인이 되도록 준비시키며, ‘타자’를 보살피고 존중하며 같이 조화롭게 사는 가치를 전하는 것이 가족, 학교, 신앙 공동체의 본성에 더 가깝다고 본다.
예를 들어, 학교는 시민의식과 공익 의식을 증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코로나19로부터 교훈을 배우자면, 학교는 오늘날의 논쟁적인 글로벌 이슈에 대한 인식을 고취하는 교육내용을 강화할 수 있다. 윤리, 역사, 사회나 여타 과목 수업에서는 이런 이슈들의 대두와 전개, 그리고 이에 대한 여러 나라 국민들의 해석을 둘러싼 역사적, 문화적 맥락을 다룰 수 있다. 이런 이슈들에 대해 더욱 제대로 이해한다면 갈등에 대한 반사적 반응을 방지하고 다름과 대화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함양할 수 있다.
가족은 봉쇄기간 동안 가족 구성원에게 물질적, 감정적, 심리적으로 일차적 지원을 제공했다. 사회 구성원들이 개인과 지역사회 전반을 지탱하는 기본적인 유대 관계에 뿌리를 내리는(단순히 연결되는 것과 대비되는) 것은 가족 안에서이다.
한편, 교회와 신앙 기반 단체는 오랫동안 자선활동과 특히 빈곤층과 취약계층에 대한 다양한 사회복지 활동을 펼쳐왔다. 이런 기관들은 코로나19 봉쇄와 같은 비상시기에 신속히 자원을 동원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지원을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활동은 구성원의 신앙을 자라게 하고 그들의 영적 필요를 돌보는 기본적인 사명에 더해진다.
가족과 마찬가지로, 교회와 신앙단체는 개인에게 위안과 심리적 지지를 제공하고 혼란과 시련 속에서 공동체의식을 신장한다. 그러나 가족과 신앙은 사적, 개인적 문제로 간주되어, 사회구조를 유지하는 데 있어 가족과 신앙의 가치에 대한 토론은 공적 영역에서 배제되어 왔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코로나19 이후 세상의 재건을 준비함에 있어 가족, 학교, 신앙 공동체가 사회 안정과 화합, 평화에 기여하는 바를 다시 생각해볼 때인 듯하다.
버지니아 미랄라오 박사는 사회학자이다. 유네스코필리핀위원회 사무총장 재직 당시 유네스코 아태교육원을 비롯해 유네스코 센터 세 곳의 이사를 역임했다. 이전에는 필리핀사회과학협의회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URL:
(No.7) 2020 팬데믹발 교착 > EIU 소식&인터뷰 - APCEIU (unescoapceiu.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