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뉴스

[APCEIU 인사이트] 코로나 이전과는 다른 세상을 준비하자
© APCEIU

 

코로나 이전과는 다른 세상을 준비하자

 

임현묵(유네스코 아태교육원장)

 

상상하기 힘든 일이 벌어지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류를 2차 대전 이후 최대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선진국이라는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들의 상황이 특히 심각하다. 하지만 위기는 때로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1918-19년 독감은 유럽 국가들의 국민건강보험 제도 도입을 촉발했다. 우리는 코로나 위기 이후 어떤 변화를 원하는가. 눈앞의 위기 극복이 우선이지만, 그 너머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세계화의 후퇴?

 

세계화가 후퇴하고 국가의 역할이 다시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거의 모든 나라가 국경을 폐쇄하고, 외국인 입국을 막고 있다. 의료물자 수출이 금지되고, 각종 부품의 국제 공급사슬이 혼란에 빠졌다. 일부 나라는 식량 수출을 금지하기까지 했다. 이런 가운데 국가의 권한과 책임은 전례 없이 확대되고 있다. 강제적인 봉쇄조치부터 인력과 자원 배분 등 전시를 방불케 할 정도다. 일각에서는 보건 파시즘이 거론되기도 한다. 또한 국민에게 재난 지원금을 지급하고, 도산 위기에 놓인 기업을 국유화하는 등 막대한 규모의 재정도 동원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가속화된 세계화로 인해 인류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긴밀하게 서로 연결되었다. 어느 한 나라도 홀로 안전할 수 없다는 뜻이다. 코로나19는 이러한 세계화의 위험을 가혹하게 보여줬다. 과연 코로나 위기 이후 시장중심 세계화가 후퇴하고, 국가 주권, 자원 민족주의, 보호무역이 강화될까? 이런 변화는 긍정적인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코로나 이전의 세계화로 돌아가야 하는가? 역사에서 위기가 꼭 긍정적 변화로 연결된 것은 아니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많았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경제적 격차가 확대되었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많은 나라에서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민주주의와 공공성 강화

 

이번 위기를 겪으면서 무엇보다 공공성 강화가 필요함을 절감한다. 시민의 건강과 안전은 민영화로 해결할 수 없으며, 사회적 연대와 공적인 시스템으로 확보될 수 있음을 막대한 희생을 대가로 새삼 깨닫고 있다. 공공의료 인력과 예산을 줄이고 민영화해온 나라들이 이번에 혹독한 고통을 겪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각국의 대응 전략과 방식은 그 나라의 방역 시스템과 의료체계, 정치체제 등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어떤 획일적인 모델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경험에서 교훈을 배우는 것은 중요하다. 대다수 나라가 긴급사태를 선포하고 확산 속도를 늦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 강압적인 봉쇄조치를 취하지 않고도 시민의 참여와 협력으로 감염 곡선을 평평하게 누르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는 확진자 동선 추적 같은 기술도 큰 역할을 했으나, 더 중요한 것은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기꺼이 협력하고자 하는 시민 정신이었다. 

 

재난과 위기가 닥치면 사람들은 두려움부터 느끼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재기 같은 행동이 벌어진다. 이러한 두려움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해독제는 민주적 리더십이다. 민주적 리더십은 시민에게 신뢰감을 심어주고 시민의 협력을 이끌어낸다. 시민의 건강과 안전을 우선시하고, 위기 상황에서 시민사회의 요구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때문이다. 일부 나라에서 일시적으로 정부의 강압적인 대응이 시민의 지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강압적인 방식은 시민의 자발적 협력과 창의적 대응을 억압하고, 결국 위기에 대처하는 공동체의 역량을 감소시킨다.

 

이와 함께 정확하고 충분하게 제공되는 정보가 중요하다. 이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기반이기도 하다. 비난에만 혈안이 된 언론과 거짓 뉴스는 시민의 책임 있는 행동을 가로막고, 위기 극복을 위해 분투하는 이들의 사기를 떨어뜨릴 뿐이다. 감염병 위기를 다루는 언론의 책임 있는 자세는 공공성 강화의 또 다른 핵심이다.  

 

바이러스는 평등하다지만 실제로는 취약계층과 사회적 약자를 더 많이 희생시키고 있다. 이들을 위해 특별한 방역 대책을 세우고 부족한 의료자원을 배분하는 결정은 과학의 도움을 받는 정치의 몫이다.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다시 되새기게 된다. 세계적으로도 의료체계가 약한 저소득국가를 위해 대책을 세우는 것은 국제 정치의 몫이다. 

 

국제 연대와 협력

 

코로나19는 감염병에 취약한 고소득국가의 실상을 드러냈다. 선진국이라는 고소득국가도 이런데, 만약 저소득국가에서 그런 폭발적 확산이 일어난다면 그 피해가 어느 정도일지 상상조차 두렵다. 이들을 위한 국제적 지원과 협력이 절실하다. 하지만 세계적 대유행 감염병 위기에 맞설 글로벌 거버넌스는 실종된 상태다. 초강대국 미국조차 국내 대응에 여념이 없어 국제사회의 공동대응을 선도하지 못하고 있다. 유럽연합 국가들도 위기 극복을 위한 적극적인 공동행동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 위기 이후 세계화가 후퇴하고 국가의 주권이 강화되는 흐름이 이어질 경우, 국제 연대와 협력이 이전보다 퇴보할 수 있다. 세계 평화와 안전에 전혀 이롭지 않은 상황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높은 장벽이 아니라, 더 많은 협력이다.

 

지속가능한 문명

 

코로나 위기가 역설적이게도 지구의 하늘을 맑게 해줬다. 각국의 봉쇄조치로 산업활동이 위축되면서 화석연료 소비가 크게 줄어든 탓이다. 덕분에 미세먼지도 줄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후위기에는 도움이 되는 역설적 상황이다.

 

사스, 메르스, 코로나19 같은 변종 바이러스가 계속 등장하는 원인은 현대 산업문명이 제공했다고도 볼 수 있다. 동식물 서식지가 파괴되고 기후변화로 생태계가 교란에 빠지면서, 변종 바이러스가 인간 사회에 전파될 기회가 더 많아진 것이다. 여기에 도시화로 인구가 밀집되고, 세계화로 국제 이동이 빈번해지면서 바이러스가 세계적으로 유행하기 딱 좋은 환경이 되었다. 

 

앞으로 감염병이 다시 유행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비하여 방역과 의료 체계를 대대적으로 손보는 작업도 필요하지만, 더 근본적으로 우리의 삶이 지속가능한 것인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코로나19는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하는 끊임없는 경제성장 논리에 사로잡힌 현대 산업문명의 위험을 경고하는 ‘탄광 속 카나리아’일지도 모른다.

 

교육의 역할

 

코로나 이후 세계의 긍정적 변화를 위해 교육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2차 대전 이후 최대 위기라는 이번 감염병 사태에서 우리는 책임 있는 시민으로서 어떤 교훈을 얻고 또 다음 세대에게 전할 것인가. 

 

무엇보다 혐오와 차별을 반대하고, 연대와 협력의 정신을 실천하는 일이 위기 극복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을 첫 번째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이번에 특정 집단을 바이러스와 동일시하며 낙인찍고 혐오하고 폭력을 휘둘렀다. 반면 물리적 접촉은 피하되 심리적 거리는 좁히려는 연대와 협력의 사례도 많이 있었다. 인종, 국가, 민족의 구분을 떠나,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의료인이나 방역당국의 노고를 응원하며, 위기 극복을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라도 실천하는 세계 시민의 모습은 우리에게 감동과 용기를 주곤 했다. 

 

민주주의와 공공성의 가치를 이해하고, 감염병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고통과 어려움에 공감하며, 특히 취약계층과 사회적 약자, 그리고 의료체계가 취약한 저소득국가를 위한 연대와 지원을 실천하는 일 또한 중요한 교훈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소셜미디어와 언론에서 접하는 정보를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능력도 중요할 것이다. 

 

현대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성찰도 이번 위기의 교훈으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화석연료 사용으로 초래된 기후위기, 세계화로 더욱 긴밀하게 연결된 우리의 삶과 그럼으로써 더 커진 위험과 취약성, 개인 정보 보호와 공동체 안전의 조화 같이 코로나가 우리에게 던진 질문은 하나같이 중요하고도 시급하다.

 

이러한 교훈을 나누고 그 의미를 함께 찾는 일이야말로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교육적 과제가 아닐까. 이러한 교육으로 역량을 키운 세계 시민은 위기 이후의 긍정적 변화를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유네스코는 앞으로 세계시민 교육을 확산하기 위한 노력을 한층 더 강화해야 할 것이다. 아태교육원도 그 노력에 동참할 것이다.

 

이 순간에도 전 세계에서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진과 방역당국에 경의와 감사의 마음을 보내며, 모든 구별과 차이를 넘어 우리는 모두 다 같은 인간이라는 인류애의 정신으로 연대와 협력에 나선 세계 시민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URL:

(No.1) 코로나 이전과는 다른 세상을 준비하자 > EIU 소식&인터뷰 - APCEIU (unescoapceiu.org)